무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은 예로부터 독서의 계절로 여겨졌다. ‘등불을 가까이하기 좋은 때’라는 뜻의 사자성어 등화가친(燈火可親)도 이러한 계절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당나라 문인 한유는 가을이 되어 서늘한 기운이 찾아오면 등불을 밝히고 책을 펼치기 좋다고 노래했다. 이처럼 가을은 오래전부터 독서와 가까워지는 계절이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니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도 좋겠다. 창 너머로 단풍 든 나무가 보이고, 따스한 가을 햇살이 책상 위로 내려앉는 공간. 자연에 둘러싸인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어떤 기분이 드는가? 아마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곳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질 것이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이란?
이처럼 자연을 애호하는 느낌, 자연과 연결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능적 성향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고 한다. 자연을 마주할 때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 역시 바이오필리 성향과 맞닿아 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은 건축과 공간 디자인에 자연 소재를 반영해 사람과 자연의 연결을 강화하는 접근법이다. 실내에 식물을 배치하는 플랜테리어뿐 아니라 자연광과 바람, 주변 녹지의 조망, 자연 소재 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최근에는 공공도서관에서도 바이오필릭 디자인 설계를 도입해 독서와 휴식, 자연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친화적인 건축은 쾌적한 독서 환경을 조성할 뿐 아니라 시민 누구나 일상에서 자연을 가까이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적 특징이 잘 드러난 서울의 도서관 5곳을 골랐다. 각 공간이 자연을 활용한 방식과 건축적 특징을 실내조경 전문가의 시선으로 살펴본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이 돋보이는 서울 도서관 5곳
1) 강동숲속도서관
통창 너머로 펼쳐진 녹색 풍경
숲을 향해 열린 커다란 창문은 강동숲속도서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열람실 곳곳에 마련된 통창을 통해 명일근린공원의 풍경이 펼쳐지며, 창가에 앉으면 나무와 눈높이를 맞추고 책을 읽을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나뭇잎의 색과 자연광이 실내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것도 특징이다.
강동숲속도서관의 널찍한 창문 설계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주요 요소인 자연 조망(Visual Connection with Nature)을 잘 보여준다. 주변 녹지를 실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건축에 반영해 별도의 실내조경 없이도 풍부한 자연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인데, 독서 중 잠시 창밖의 숲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감상하며 눈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다.
2) 아차산숲속도서관
숲길의 연장선에 놓인 도서관
아차산생태공원 인근에 자리한 아차산숲속도서관은 산책과 독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숲길과 가까운 입지 덕분에 가벼운 산책을 마친 후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기 좋다. 2층 규모의 아담한 건물이지만 높은 층고와 개방적인 구조가 돋보이며 넓은 유리창을 통해 주변 녹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 주목할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특징은 실내 공간과 외부 자연 환경의 연결이다. 도서관 주변의 산책길에서는 나무의 향기와 바람, 자연의 소리를 직접 느낄 수 있고 실내에서는 창밖의 녹음을 바라보며 독서에 집중할 수 있다. 자연을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경험과 직접 체험하는 활동이 이어지면서 다양한 감각으로 자연과 교감할 기회를 제공한다.
3) 한내 지혜의 숲
책장 너머로 확장되는 건축의 경계
©openhouse seoul
한내 지혜의 숲은 독특한 지붕 구조와 서가 디자인이 특별하다. 여러 개의 삼각 지붕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이어지는 도서관 외관은 나무들이 모여 있는 숲을 연상시킨다. 내부에서는 책장이 벽과 기둥의 역할을 하며 공간을 나누고 공원을 향해 열린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자연광과 주변 풍경이 실내로 들어온다.
한내 지혜의 숲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형태를 건축 디자인에 반영한 사례로 살펴볼 수 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실제 식물을 배치하는 것뿐 아니라 자연의 형태와 패턴을 공간에 적용하는 방식으로도 구현된다. 자연을 닮은 건축 형태와 실제 자연 경관이 어우러져 실내에서도 자연을 가까이 느끼며 독서를 즐길 수 있다.
4) 오동숲속도서관
목재로 연결한 건축과 자연
오동숲속도서관은 목재를 건축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활용했다. 기둥과 지붕을 이룬 나무 소재는 서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일관된 공간 구성을 만들어낸다. 높낮이를 달리한 지붕과 창문은 자연광을 실내 깊숙이 유입시키며 목재 특유의 색감과 나뭇결은 창밖의 숲과 시각적인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설계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주요 요소인 자연 소재와의 연결(Material Connection with Nature)을 잘 보여준다. 목재는 자연 고유의 질감과 색채를 지닌 소재로 실내에서도 자연의 물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오동숲속도서관은 목재를 구조와 마감 전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외부 녹지의 조망과 자연채광을 결합해 자연친화적인 공간 환경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5) 양천공원 책쉼터
자연과 건축의 조화로운 공존
양천공원 책쉼터는 기존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는 쪽으로 설계를 진행했다고 한다. 건축가는 부지에 있던 감나무와 느티나무를 남기고 주변 잔디밭의 곡선과 땅의 높낮이를 고려해 건물 골조를 세웠다. 잔디밭을 향한 외벽에는 폴딩도어를 설치해 문을 열면 실내 독서 공간과 바깥 공원이 하나의 공간처럼 이어지도록 했다.
양천공원 책쉼터는 기존 자연환경과 건축의 조화가 돋보인다. 인위적으로 새롭게 공원을 조성하는 대신 원래 자리에 있던 나무와 지형을 공간 설계의 일부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기존 녹지를 보존하면서도 이용자들이 나무와 햇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공원의 풍경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자연의 역할
지금까지 살펴본 다섯 개의 도서관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을 공간에 반영했다. 기존의 나무와 지형을 보존하거나, 목재와 자연광을 활용해 실내를 구성하거나, 혹은 커다란 창으로 숲의 풍경을 담아냈다.
자연과의 연결을 고려한 공간 설계는 건축에서부터 실내 조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에코피플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도서관 및 공공기관의 공간적 특성과 이용 환경을 고려한 플랜테리어를 제안하고 있다. 도서관 내부에 식물을 적용한 에코피플의 실제 바이오필릭 디자인 프로젝트는 또다른 아티클 도서관 플랜테리어 | 식물로 확장한 공간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